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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나들]2000년 6월29일 순수는 짓밟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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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노동자들의 친절과 상냥함 뒤에는 사용자의 가혹한 부당노동행위가 있었다. 2000년 여름 그들은 노조 설립 22년 만에 파업에 들어가 74일을 싸우다 경찰 대테러 부대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됐으나,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당시로서는 놀라운 성과를 얻어냈다. 그 뒤 사용자 쪽의 집요하고 치밀한 압박으로 노조 조직은 형해화됐다. 김진수 기자 jskim21hani.co.kr
기자 생활 태반을 노동문제에 매달렸다. 햇병아리 시절 일이다. 경기도의 한 기초단체에서 용역계약을 맺고 거리 청소를 하는 노동자를 만났다. 노조를 만들었는데 탄압이 심해 규탄집회를 하고 있었다. “노조가 생기니까 뭐가 좋으세요?” 얼굴이 까맣게 그을리고 주름이 가득한 50대 후반의 청소노동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노조가 없었을 때는 시청 공무원이나 업체 관리자들이 ‘어이~’라고 불렀어. 노조가 생기니까 ‘김씨~’라고 부르는 거야. 그러니까 노조를 지켜야지.” 순간 가슴이 뜨거워지고, 코끝이 찡해졌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의 기억은 오랜 세월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고 있다.

그사이 노동자들은 수도 없이 저항했다. 그러나 기록은 부실했다. 사건을 쫓기에 급급했다. 노동자들이 왜 투쟁했는지 살피는 것은 그 시대의 모순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역사는 기억을 둘러싼 ‘계급투쟁’이라는 말이 있다. 지나간 노동의 흔적을 얼마나 제대로 기억하느냐에 따라 전체 역사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위치도 달라질 것이다. 나아가, 지금 노동운동은 왜 위기에 빠졌는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노동운동사 ‘아름다운 저항 2.0’1 연재를 시작하는 이유다. 첫 번째 이야기는 2000년 6월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롯데호텔 노동자들의 투쟁이다.

잔인한 기억2

2000년 6월29일 새벽 4시. 밖이 어둡다. 서울 한복판인 중구 소공동에 있는 롯데호텔 36층, 37층 연회장과 식당에 1100여 명의 롯데호텔 노동자들이 모여 있다. 파업 21일째. 6시간 전인 28일 밤 10시에 교섭이 예정됐으나, 회사 쪽에서 일방적으로 취소 통보를 해왔다. 올 것이 온 것인가? 출입문은 식탁과 의자로 막아놨다. 사방이 밀폐된 공간에서 이들은 숨죽이며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다. 여성은 400여 명이었다.

‘펑~.’ 갑자기 사람들 사이로 무엇인가 날아왔고,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불빛이 번쩍하면서 연기가 났다. 마치 폭탄 같았다.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연기 탓에 숨이 막혔고, 앞도 볼 수 없었다. 커튼에 불까지 붙으면서 ‘죽음의 공포’가 덮쳐왔다. 사람들은 살려달라고 유리창에 ‘SOS’를 그렸다. 호텔 일만 하던 노동자들은 특공대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3시간여 만인 아침 7시, 출입문이 뚫렸다. 대테러 업무를 맡고 있는 솔개부대가 우르르 들어왔다. “대가리 박아. 대가리 드는 새끼 다 쪼개버릴 거야.” 경찰들은 군홧발로 짓밟고, 곤봉으로 내리쳤다. 퍽! 퍽! 이곳저곳에서 타작 소리가 났다. 사람들은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 처음 당하는 폭력 앞에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은 상실됐다.

박지선(가명)씨도 36층에 있었다. 임신 7주째였다. 두려움보다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절박했다. 조합원들은 “임신부도 있어요. 때리지 마세요”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지선씨는 눈앞에서 남성 조합원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온몸이 떨렸고, 배가 아파왔다. 아이는 엄마의 뱃속에서 숨을 멈췄다.

김기철(가명)씨는 참다못해 장애인증을 꺼냈다. 그는 양쪽 무릎과 허리를 쓸 수 없는 지체장애 4급이다. “나는 장애인이다. 똑바로 앉을 수가 없다”고 울부짖었지만 곤봉은 그의 몸을 강타했다. 한번 시작된 폭력은 이성을 마비시켰다. 기철씨는 골절 등으로 전치 4주의 진단을 받았다.

전쟁 같은 진압은 오전 10시를 넘어 끝났고, 노동자들은 경찰서로 연행됐다. 이날 진압에는 34개 중대 3600명의 경찰이 투입됐다. 롯데호텔 노조는 그 과정에서 404명이 부상당했다고 밝혔다. ‘인권 대통령’으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김대중 정부 시절에 일어난 일이다. 노동계와 인권단체들은 “한마디로 ‘짐승사냥’이었다. 제2의 광주 사태를 방불케 했다”며 분노했다. 대테러 부대가 노동 현장에 투입된 것은 전두환과 노태우 군사정권 때인 1985년, 1987년 두 번의 대우자동차에 이어 롯데호텔이 세 번째다.

무능과 뻔뻔함3

2000년 7월7일,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실. 여야 의원들은 최선정 노동부 장관을 상대로 롯데호텔 경찰 투입에 대해 질타했다. 최 장관은 경찰 투입 당시 “잠을 자고 있었다”고 답했다. 정부 안에서도 노동은 무능했다. 노동은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의 문제인데도 늘 ‘공안’ 앞에서 무기력했다.

국회의원(이하 의원) - 장관님께서는 롯데호텔에 공권력이 투입된다는 것을 언제 아셨습니까?

최선정 노동부 장관(이하 장관) - 투입된 직후에 보고를 받았습니다.

의원 - 그 전에는 모르셨습니까?

장관 - 예. 저는 집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의원 - 이것은 제가 볼 때 엄청난 일입니다. 인권을 넘어 사람을 짐승 취급했어요. 솔개부대가 그 좁은 공간에 많은 인원을 전부 엎드리라고 해서 굴복시켜놓고 경찰관들이 짓밟고 돌아다녔습니다. 이런 상황 알고 있으세요?

장관 그런 상황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0년 7월7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회의실. 국회에 불려나온 이무영 경찰청장은 당당했다. 아이를 잃은 임신부를 포함해 수백 명의 노동자가 다쳤지만, 그는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의원 - 근로자들이 뭘 그렇게 잘못한 것이 있다고 몇천 명의 경찰 병력을 작전하듯 새벽에 들여보내 진압을 합니까?

이무영 경찰청장(이하 청장) - 시설점거·농성 등 불법행위가 계속될 경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 국제회의 참석자들과 외국 바이어들이 주로 이용하는 특급호텔의 파행 운영으로 국가 이미지 훼손 및 대외 신인도 하락이 우려돼 부득이 강제해산 조치했습니다.

의원 - 경찰특공대는 대테러 작전을 하라고 국민의 혈세를 들여서 한 것이지, 나약한 근로자를 진압하는 데 쓰라고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과격한 공권력 투입이었다고 생각 안 하십니까?

청장 - 그렇게는 생각 안 합니다.

2000년 여름, 롯데호텔 노동자들은 왜 처참하게 맞아야 했을까?

모범사원에서 노동운동가로

다행히 웃고 있었다. 이남경(45) 롯데호텔 노조 전 사무국장. 지난 10월26일 서울 도봉구에 있는 무수골 주말농장에서 그를 만났다. 롯데호텔을 떠난 이 국장은 주말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무수골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결국 고향의 품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셈이다. 롯데호텔. 그에겐 지울 수 없는 이름이다. 2000년 6월9일부터 74일 동안 진행된 노조 파업은 이 국장의 인생을 바꿔놨다. 그는 23살인 1991년 롯데호텔에 들어갔다. 호텔의 ‘얼굴’ 격인 프런트에서 행정 업무를 맡았다. ‘열혈남아’라는 별명에서도 보듯, 열정이 많고 밝은 성격이었다. 그리고 모범사원이었다. 연극반에도 참여하고, 회사 행사에서는 춤을 추며 분위기를 띄웠다. 호텔에서 인상 좋은 모범사원으로 인정받아, 호텔을 알리는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에도 여러 번 출연했다.

롯데호텔노조 파업과 관련된 인물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좀더 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평범한 호텔리어였던 이 국장이 노조에 관심을 가진 것은 ‘어용노조’ 때문이다. 평소 얼굴도 볼 수 없던 노조 간부가 어느 날 밤 술을 마시고 들어와 일하던 선배에게 난동을 부린 사건이 있었다. 같은 부서 직원들이 모였고, 노조 간부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집단행동은 강한 힘을 발휘했고, 노조 간부는 사과했다. 힘을 모으니 잘못된 것이 바로잡히는 경험을 한 것이다. 다음 노조 선거를 앞두고 새로운 움직임이 생겼다. 이 국장은 같은 부서의 선배가 찾아와 자신에게 했던 말을 13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눈이 반짝반짝한 사람들이 빛과 소금 역할을 하고 있다. 만나보자.” 이 국장은 양복까지 차려입고 민주노총 사람들을 만났다. 그때 민주노총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함께 간 선배가 정주억 위원장이다. 정 위원장은 1999년 롯데호텔 노조 위원장에 당선된 뒤 상급단체를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으로 바꾸고, 2000년 파업을 이끈 사람이다.

롯데호텔에 민주노조 깃발이 꽂히자, 현장의 억눌려 있던 분노들이 노조를 중심으로 모이고 있었다. “임금·단체 협상을 앞두고 조합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설문조사를 했어요. 이런 것도 처음이었죠. 그 결과를 조합원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식당에 대자보로 붙였죠.” 노조가 조합원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회사의 반응은 냉담했다. 노조가 3월부터 두 달 동안 교섭을 요구했지만 한 번도 응하지 않다가, 5월12일 겨우 첫 상견례를 했다. 롯데호텔에서 민주노조가 자리를 잡으면 롯데그룹의 다른 계열사들로 확대될 수 있는 만큼, 회사는 긴장했다. 겨우 교섭이 시작됐지만 쟁점은 좁혀지지 않았다. 노조는 88%라는 높은 찬성률로 파업을 결의했다. 하지만 ‘어용노조’ 시절에 맺은 단체협약이 노조의 발목을 잡았다. 협약에는 노사 중 일방이 노동위원회에 중재를 신청할 수 있게 돼 있었다. 노동법에 따라 중재에 회부되면 15일 동안 쟁의행위가 금지됐다. 일방중재 조항은 노동 현장에서 회사가 노조의 파업을 막기 위해 빈번하게 악용했다. 예상대로 회사는 6월8일 노동위원회에 일방중재를 신청했다.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 순수했어요. 옳으니까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새내기 민주노조는 불법을 감수하며 6월9일 노조 설립 22년 만에 처음으로 파업에 들어갔다.

민주노조의 힘4

‘노동자는 하나’라는 말은 구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사회는 불안하고 그나마 기득권을 가진 정규직은 그 자리를 빼앗길까봐 겁이 나는 탓에 비정규직 문제를 방치한다. 민주노조도 마찬가지였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뒤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은 급속히 확대됐다. 롯데호텔 노동자들은 이런 흐름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노조는 파업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가장 핵심적인 요구안으로 걸었다.

롯데호텔노조 이남경 사무국장이 2000년 6월 파업집회에서 노래와 율동을 하고 있는 모습(왼쪽). 이 국장은 파업으로 해고를 당했고, 복직하지 못했다. 지금은 아내와 함께 서울 도봉구에 있는 무수골 주말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이남경

롯데호텔은 1996년부터 정규직을 뽑지 않았다. 환율 인상으로 오히려 흑자를 내고 있었지만 ‘경제위기’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틈타 부부 정규직 중 한쪽을 일방적으로 퇴출시키고 상여금을 삭감했다. 비정규직은 계속 늘어 전체 노동자 중 57%를 차지했다. 고용 불안을 느낀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위해 나섰고,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큰 용기로 화답했다. 파업에 참여하면 계약이 해지될 가능성이 높은데도 비정규직 수백 명이 투쟁에 함께했다. 자본이 갈라놓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경계선을 롯데호텔 노동자들은 ‘노조’라는 이름으로 깨부순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직장 내 성희롱’에 저항한 사업장도 롯데호텔이다. 파업으로 여성 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자연스럽게 그동안 마음속에 숨겨온 얘기들이 나왔다. 노조가 지켜주고 있다는 믿음이 여성 노동자들을 움직이게 했다. 노조는 여성 노동자 322명이 성희롱을 당했다며 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했고, 270명은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나서 일부 승소했다. 법원에서 인정된 사례만 봐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노래방에서 강제로 키스를 하거나 회식 자리에서 귓속말로 “자고 싶다”고 말하고, 근무 중에 “안아보자”고 괴롭히는데다, 음담패설은 회의 시간에도 자연스러울 정도로 일상화돼 있었다.

롯데호텔 성희롱 사건은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참기 힘든 처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큰 파장을 남겼다. 그동안 겉치레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해오던 기업들도 비상이 걸렸고, 말도 못한 채 당하고만 있던 여성 노동자들이 자각하는 계기가 됐으며, 성희롱 대책이 시급하다는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화려한 특급호텔의 ‘아름다운 여성’으로만 취급받던 그들이 사회를 변화시킨 것이다.

돌아가지 못한 해고자들, 그리고 민주노총 탈퇴

74일 만에 파업이 끝났다. 많은 것을 얻었다. 회사는 노조와 ‘입사 3년 지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비정규직 보호’를 단체협약으로 제도화한 것이다. 정리해고가 남발되는 당시 분위기로는 파격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비정규직이 2년 이상 일하면 정규직이 된다’는 정부의 비정규직 법안이 시행되기 7년 전의 일이다.

또한 노사는 성희롱 근절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고, 노조 파업을 불법으로 만들었던 ‘일방중재’ 조항도 단체협약에서 삭제했다. 하지만 잃은 것도 있었다. 정주억 위원장, 김경종 부위원장, 이남경 사무국장, 이미영 조직부장, 박정의 여성부 위원장은 해고자가 됐다. 한 가족의 가장이자 아내였던 이들에게 해고는 무거운 짐이었지만, 긴 투쟁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희생을 받아들였다.

“파업이 끝난 뒤 회사는 장기적 계획 아래 조합원들을 일상적으로 치밀하게 압박했어요. 해고된 노조 집행부는 호텔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막았죠. 파업으로 함께 있을 때는 힘이 강했지만, 일상에서 조합원 개인은 버티기가 힘들었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조가 급격하게 약화됐어요.” 이남경 사무국장은 민주노조 집행부가 들어선 지 6개월 만에 파업이 진행되면서 ‘다음’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근데 파업을 막을 수는 없었다고 봐요. 최선을 다했지만 한계가 컸던 거죠.” 한번 얼어붙은 현장은 쉽게 회복되지 못했다.

면세점 노동자들이 따로 노조를 만들어 떨어져나갔다. 2008년엔 해고자들과 노조의 연결고리마저 끊어졌다. 노조는 위로금 등을 주면서 조합원 신분 정리를 결정했고, 해고자들은 다시는 롯데호텔에 다닐 수 없게 됐다. 투쟁 과정에서 발생한 해고자 문제는 민주노조의 운명과 맞닿아 있다. 조합원을 위해 희생한 해고자들이 ‘노조의 힘’으로 복직돼야 다음 투쟁에서 또다시 싸울 사람이 생긴다. 롯데호텔은 현장의 힘이 약해지면서, 그들을 위해 희생했던 해고자들을 결국 내치게 됐다.

시련은 계속됐다. 2010년 11월 롯데호텔 노조는 민주노총마저 탈퇴했다. 민주노총 탈퇴를 주도한 롯데호텔 노조 위원장은 회사에 협조적인 집행부였고, 나중에 조합비 횡령으로 실형까지 받았다. 사규상 해고 대상이지만, 지금도 회사를 다니고 있다. 조합원들은 회사가 보호하고 있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롯데호텔 노조의 추락은 날개가 없어 보였다.

사회를 변화시켰던 2000년 74일 파업은 그저 ‘한여름 밤의 꿈’이었을까? “진짜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아직 조합원들은 살아 있습니다. 지난해 노조 임원 선거에서 민주노조 집행부가 다시 위원장에 당선됐습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분명 반전할 수 있는 순간이 올 겁니다.” 이남경 사무국장은 현실과 희망이 뒤섞인 긴 한숨을 내쉬었다.

글 김소연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기자 dandy@hani.co.kr

1 소설가 방현석씨가 1970년부터 1997년까지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록한 책 <아름다운 저항>에서 빌려온 제목이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록한다는 의미에서 ‘아름다운 저항 2.0’ 버전으로 이름을 붙였다.

2 롯데호텔 파업 폭력진압 국가 손해배상 청구 소장, 롯데호텔 파업 폭력진압 국가 손해배상 일부 승소 판결문(본문에 인용된 박지선씨와 김기철씨는 경찰의 과잉 진압이 인정됐다) 인용.

3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행정자치위원회 회의록.

4 롯데호텔 직장 내 성희롱 진정서 및 손해배상 일부 승소 판결문, 이남경 롯데호텔노조 전 사무국장 인터뷰를 참고했다.

조철 전 민주관광연맹 위원장 인터뷰

“그때만 생각하면 난 빚쟁이다”

전북 장수군 장계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산기슭을 따라 20분 정도 올라가면 육십령휴게소가 있다. 특급호텔 조리사 출신인 조철(53)씨가 일하는 곳이다. 입소문이 나서 음식만 먹으러 휴게소를 찾는 이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한때 조씨의 직함은 민주관광연맹 위원장이었다. 13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일까. 지난 10월29일 만난 조 위원장은 편안해 보였다.

조철 전 민주관광연맹 위원장
2000년 6월 롯데호텔을 시작으로 10일 스위스그랜드호텔, 23일 힐튼호텔 등 서울의 특급호텔 3곳이 비정규직의 정규화 등 공동요구안을 걸고 잇따라 파업에 들어갔다. 노동운동을 이끌어온 대공장 제조업 노조들도 하기 힘든 일을 호텔노동자들이 한 것이다. 이들의 투쟁으로 비정규직 문제는 순식간에 사회적 쟁점이 됐다. 당시 호텔 3사의 파업을 이끌었던 사람이 바로 조철 위원장이다. 외모로만 봤을 때는 ‘순한 선비’ 같은 조 위원장은 어쩌다가 노동운동을 하게 됐을까?

그는 능력 있는 조리사였다. 쉐라톤워커힐에서 2년 근무하고 1987년 좋은 조건으로 스위스그랜드호텔(지금의 그랜트힐튼호텔)로 직장을 옮겼다. 승진도 빨랐고 큰 행사도 자주 맡았다. 그러던 그가 노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부당한 것을 보면 말해야 하는 스타일이에요. 위원장이 노조를 ‘완장’ 삼아 활동했어요. 노조를 민주적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는 1991~96년 두 차례 노조위원장을 지낸 뒤 호텔노조 등이 모여서 만든 민주관광연맹 위원장을 맡았고, 공동 파업까지 이뤄냈다.

“사업장마다 상황의 차이가 있었지만 서로 맞추려 애썼습니다. 호텔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은 비슷했으니까요. 정규직은 줄고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노동조건이 나빠지고 있었어요. 호텔의 비민주적 경영으로 이런 문제가 그동안 협상 대상조차 되지 못했어요.” 당시 민주노총의 시대적 목표가 산업별 노조 건설이던 만큼, 조 위원장은 공동투쟁을 통해 기업을 뛰어넘는 연대를 꿈꿨고 실천했다. 롯데호텔보다 상대적으로 주목도는 떨어졌지만 스위스그랜드 120일, 힐튼도 42일이나 파업해 큰 성과를 냈다.

물론 아픔도 컸다. 롯데호텔에 ‘솔개부대’가 투입된 날은 고스란히 상처로 남아 있다. “호텔 밖에 있었는데, 갑자기 대포 소리(섬광탄)가 났어요. 누군가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경찰에 항의하다 연행됐죠.” 조 위원장은 서울 외곽에 버려졌다가 2시간 만에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날이 밝았고 조합원들이 끌려 내려오고 있었어요. 피가 뚝뚝 흐르는 부상을 당했는데도, 조합원들이 투쟁가를 부르더군요. 정말 자랑스럽고 짠했어요.”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민주인사라는 이가 대통령이던 정부는 왜 이렇게 노동자에게 가혹했을까? “여러 가지가 섞여 있을 거예요. 6·15 남북 정상회담 당시 롯데호텔이 프레스센터였는데 파업을 했으니 ‘괘씸죄’에 걸린 거죠. 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뒤 경제를 활성화해야 하는데, 핵심은 ‘노동의 유연화’였어요. 노동계를 걸림돌이라고 본 거죠. 누르고 가야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조 위원장은 호텔 3사 투쟁 이후 소속 호텔에서 해고됐다. 1987년에 입사했으니 15년 만이다. 해고 뒤 노동운동 내부에서 이런저런 상처를 받았고, 운동도 그만뒀다. 한동안 노동운동 진영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조 위원장은 한 발짝 떨어져서 호텔 노조들이 약화되는 과정을 바라봐야 했다. 스위스그랜드호텔 노조도 2009년 민주노총을 탈퇴했다. “파업으로 핵심 간부들이 해고되고, 조직을 끌고 갈 토대가 너무 취약했던 것 같아요. 노동운동 진영도 사람을 만들어내야 했는데…, 그게 부족했던 것 같아요.” 2000년 여름을 생각하면 조 위원장은 항상 ‘빚쟁이’가 된 것처럼 마음이 답답하다고 했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조 위원장은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역할이 주어진다면 노동운동을 다시 하고 싶다”고 했다. “큰 상처를 받았지만, 노동운동 하면서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언제일지 알 수 없지만, 노동운동을 하는 조철 위원장을 다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작 궁금한 건 따로 있다. 그를 다시 불러내는 시대는 노동자에게 지금보다 나아진 시대일까, 아니면 더 나빠진 시대일까.

글·사진 김소연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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